세입자라고 다 같은 세입자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세입자’라고 하면 주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무(無)주택자’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적지 않은 가구들이 남의 집에 세 들어 살지만 자가(自家)를 보유한 ‘유(有)주택자’이다. 이처럼 자기 집을 갖고 있으면서도 남의 집을 임차하여 살고 있는 경우를 주택의 소유와 거주 간 불일치 또는 분리 현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주택의 소유와 거주 간 불일치를 선택한 가구는 ‘불일치가구(흔히 무늬만 세입자라고도 함)’로 정의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세 들어 사는 자가소유 가구(이하 불일치가구)’의 비율은 외국에 비하여 그 수치가 높은 편이다. 실제로 미국과 스페인의 경우 불일치가구의 비율이 각각 2.9%, 1.9%(Ioannides et al.(1994), Manrique et al.(2003))인데 비하여, 우리나라 수도권의 불일치가구는 9.3%(전국 6.8%)에 달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현상의 원인 및 불일치가구의 특성은 무엇이며, 향후 전망은 어떨까?
<표 1> 주택 소유와 거주의 불일치가구 현황
우리나라에 ‘불일치가구’가 많은 이유는?
우선 외국에 비하여 우리나라의 불일치가구 비율이 상대적은 높은 것은 독특한 우리나라의 전세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는 주택을 매입할 때 해당 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임차인의 전세금을 부채조달(debt financing)하는 방식으로 매입자금을 마련하는 경우처럼, 전세금이 갖는 레버리지 효과(leverage effect)는 소유와 거주의 분리를 용이하게 해주는 기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주택을 소유한 가구가 기존 주택을 팔지 않고 다른 주택에 임차인으로 들어가는 경우에도 전세금은 주택의 소유와 거주의 불일치 선택을 돕는 기제로 작용가능하다. 즉 다른 주택으로 이주할 때 기존주택은 전세로 임대하고, 이때 임차인으로부터 받은 전세금은 새로운 이주해갈 주택의 전세금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전세제도는 불일치가구 증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한편 Ioannides et al.(1994)은 거주자의 주택점유 및 소유에 대한 선택이 가구의 소비수요와 투자수요의 차이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전세제도 외에 개별가구의 특성에 따른 주택의 소유와 거주 간 불일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소비수요(점유)와 투자수요(소유)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소비수요’는 주택을 소비재적인 측면에서 보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주택을 선택할 때 자녀교육 문제, 직주근접(職住近接) 등과 같은 실제 생활에 연관된 수요가 이에 해당한다. 한편, ‘투자수요’는 주택을 투자수단의 측면에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주로 주택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자본이득(capital gain)에 관한 것으로서 과거 주택상승 경험 등에 의한 가격상승 기대(적응적 기대가설)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비수요와 투자수요가 과연 주택의 소유와 거주의 분리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보자.
먼저 소비수요측면에서 살펴보면, 가구가 소비수요를 충분히 충족시킬 만큼의 재정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 주로 불일치가구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구체적으로 학생자녀가 있어 자녀교육을 위하여 우수학군으로 이사할 필요가 있다거나, 출퇴근시간을 줄이기 위하여 접근성이 좋은 지역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경우 이를 충족시킬 주택에 대한 소비수요는 높을 것이다1). 그러나 기존에 소유하고 있는 가처분 주택을 포함하여 소득과 자산의 경제적 여력이 이러한 소비수요에 상응하는 주택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 불일치가구가 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 실데이터 분석을 통하여 증명되었다. 즉, 근본적으로 주택의 소비수요 수준과 경제적 능력간의 괴리가 유주택자임에도 불구하고 임차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투자수요측면에서 살펴보자. 투자수요에 따른 불일치는 생활여건(자녀의 학군, 직주근접 등)에 맞는 주택과 보유주택이 공간적으로 서로 일치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유주택가격의 상승기대가 상당히 큰 경우에 주로 발생한다. 환언하면 보유주택을 팔고 생활이 용이한 지역의 주택을 새로 구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보유주택으로부터 발생할 자본이득에 대한 기대가 더 크기 때문에 주택의 소유와 거주의 불일치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기존 주택에 대한 투자수요로서, 결국 소유와 거주의 불일치는 주택에 대한 소비수요와 투자수요를 공간적으로 분리시켜서라도 동시에 충족시키려는 경우에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소비수요가 현재 거주주택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면, 투자수요는 기존 소유주택을 통해 충족됨으로써 소유(투자수요)와 거주(소비수요)간 공간적 분리가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종합 및 향후 전망
정리해보면, 우리나라에 소유와 거주 간 불일치 현상이 많이 나타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주택의 소비수요와 투자수요가 모두 높은 수준으로 빠르게 증가하였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소득 증대에 따라 주택의 소비수요 수준이 꾸준히 증가해 왔지만, 이러한 소비수준을 충족해 줄만한 주거지가 상대적으로 부족하여 교육환경 등 주거환경이 양호한 일부 주거지에 소비수요가 공간적으로 집중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지속적인 주택가격 상승으로 인해 대부분의 주거지에 투자수요가 상존하였다. 이에 따라 소비수요(거주)와 투자수요(소유)가 보다 쉽게 공간적으로 분리될 수 있었고, 이를 우리나라 고유의 전세제도가 촉매제로 작용하여 더욱 촉진시킨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상품은 다른 재화와 달리 쉽게 이동시킬 수 없고(不動性), 재화생산에 장시간의 시간이 소요되어 수급조절이 힘들다는 특성이 있다. 또한 동일한 주택이라 할지라도 교육환경, 접근성 등과 같은 지리적 특성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이러한 점에서 모든 주택소비자의 수요를 만족시켜 주택 소유와 거주의 불일치를 해소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 양호한 환경의 주거지가 많이 조성되어 주택가격이 안정되면서 동시에 전세물량도 감소한다면, 소유와 거주의 불일치 현상은 점차 완화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실제 분석결과 학생자녀가 있는 가구는 그렇지 않은 가구에 비해 불일치를 선택할 확률이 2.9배, 직장변화가 있는 가구는 그렇지 않은 가구에 비해 불일치를 선택할 확률이 2.7배 증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