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는 이미 시스템적으로 사망... 전세사망신고서
전세는 죽었다. 시스템적으로 그렇다. 집값 상승을 통한 자본이득(capital gain)으로서의 레버리지(leverage)를 기대할 수 없는 시장에서의 전세는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한 온전한 한국식 전세가 아니다. 엔진이 멈춘 셈이다. 반전세 또는 보증부 월세 등은 전세 이후(post-Geonse)의 시장에 존재하는 이미 전세가 아닌 월세화된 상품들에 불과하다. 전세는 어떻게 사망에 이르게 되었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매맷값 하락에 따라 자본이득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졌다.
전세의 유래까지는 아니어도 전세라는 제도는 압축 성장하던 고성장 시대에 우리에게 꼭 맞는 산업시대의 ‘제품’이라 할 수 있다. 70년대 이후 산업화 시대를 지나면서 집값은 날로 치솟았고 전세보증금을 통한 전세라는 임차방식은 집을 사려는 사람과 전세를 살려는 사람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효과적인 상품이었다. 집을 사려는(실수요자 혹은 투기적 수요자) 사람에게 전세금에 일부를 보태면 얼마 후 집값이 상승했다.
상승한 집값은 그대로 자본이득이었고 전세 세입자가 나가면 또 다른 전세 세입자를 조금 더 오른 전세금으로 대체해 받으면 되었다. 그러면 또 마술처럼 집값이 올랐다. 이런 과정을 통해 소위 ‘10년 주기설’도 등장하게 되었고 산업의 역군인 베이비붐 세대들은 하나둘 이렇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집값 하락은 이런 기대감을 빼앗아 갔다. 베이비붐 세대든 아니면 내 집 마련을 꿈꿔왔던 30, 40대 가구에는 한마디로 상실감이다. 그런 상실감이 만든 것이 바로 지금의 거래절벽인 셈이다. 보상받지 못할 상실감으로 인한 흉터가 크다. 생채기는 아물지 몰라도 그로 인한 거래절벽의 흉터는 앞으로의 선택에서도 트라우마(trauma)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전세보증금을 통한 내 집 마련 기회의 박탈이다.
이전 전세 시스템을 통해 세입자는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전세보증금을 통해 실현할 수 있었다. 오르는 집값을 위해서는 목돈이 필요한데 일정 기간 내 집처럼 전세 살면서 알뜰히 저축하면 전세금과 그간 모은 돈으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르는 전셋값으로 인해 오르는 전세보증금을 충당하기에도 벅차다. 아니 단기간 급격하게 오른 전세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아니 마련하기에는 상승 폭이 너무 크다. 모 언론사에서 전셋값이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한 지난 2009년 1월부터 2013년 7월 현재까지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을 조사한 결과 1억 9,431만 원에서 2억 7,728만 원으로 8,296만 원이나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월평균으로 나누면 55개월 동안 매월 151만 원씩 오른 셈이다. 2013년 4인 가구 최저생계비인 154만 6,399원에 버금가는 금액이다. 전셋값이 이런 상승세로 인해 도시 근로자들은 전세금을 마련하기에도 벅찬 실정이다. 사정이 이러니 전세보증금에 일부를 보태 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이제 어렵다. 기회의 박탈이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셋째, 주택지표의 질적 향상이다. 국토부가 2년마다 조사・발표하는 2012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가보유율은 2010년 60.3%에서 2012년 58.3%로 2.0% 감소하였고, 자가점유율은 2010년 54.3%에 비해 0.5% 소폭 감소하여 53.8%를 나타내고 있다. 집값하락, 전세가 상승과 무관하지 않은 듯 하지만 그 인과관계를 밝히기란 쉽지 않다. 다만, 지표상으로 볼 때 주택지표가 이전에 비해 향상된 것만은 틀림없다. 여기에 2012년 현재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은 102.7%이다. 주택보급률 하나만을 놓고 주택지표가 개선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1,000명 당 주택수를 놓고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조금 더 주택을 공급해야겠지만 이 역시 이전과 비교해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임에는 분명하다. 주택에 대한 새로운 수요의 창출은 신규수요와 대체수요를 통해 가능한데 현재의 매맷값 하락과 전셋값 상승의 시장 상황은 수요를 현격히 감소시키고 있다. 아니 수요 자체가 형성되고 있지 않다는 게 옳다.
전세의 다른 ‘(임대)칸’... 월세로 갈아탄 전세시장
전세는 자기 자리를 지켰다(keep the place).
전세는 자기 자리를 지켰다(keep the place).
전세라는 제도는 세계 유일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시스템이었다. 주택시장을 형성하고 만드는 중요한 엔진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여전히 그 엔진은 돌고 있다. 그러나 임대인, 임차인 모두 현재의 전셋값 상승 시장으로 인해 집값 레버리지와 전세보증금을 통한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잃었다는 상실감은 앞으로 전세제도라는 시스템 자체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황이 뚜렷하다. 전체 가구 중 전세 비율은 2000년 28.2%에서 2010년 21.7%로 하락한 반면, 월세는 14.8%에서 21.4%로 상승했다는 것이 이러한 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한다.
전셋값 상승이 촉발시킨 상황은 임대차 구조 자체를 변화시켰다. 임대인은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게 되었고 전세 세입자는 반전세 또는 반월세의 익숙하지 않은 임차 형태로 재계약하고 있다. 전세물건 부족의 수급불균형이 만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월세로 ‘(임대)칸’을 바꿔 갈아탄 집주인과 세입자들은 낯설지만 새로운 월세 문화를 접하고 있거나 접해야 하는 상황이다. 임대인의 선택과 임차인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만든 새로운 상황(칸)으로의 전환인 셈이다.
국민 여론을 무시한 탓에 서민과 중산층의 가벼운 지갑을 얇게 만드는 세법개정안이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되는 것처럼 쉬운 전세대출은 전세금을 올려주는 역기능으로 인해 월세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전세시장의 안정이 궁극적으로 주거 및 주택시장 안정에 이바지할 것으로 봤던 정부의 시나리오가 대내외 경제여건의 불확실성과 맞물리고 전형적인 내수부진을 통해 가격 하락에 따른 반작용으로 거래절벽과 전셋값 폭등을 유발했다.
전세시장의 종말은 예견된 것이다. 다만, 예상하지 않은 시점에서, 예상 못 한 결과에 소비자뿐만 아니라 정책당국자 입장에서 당혹스러울 뿐이다. 지역적으로 또는 국지적으로 양상은 달리하겠지만, 전세의 퇴진은 불가피하다. 오히려 이러한 변화에 조응할 수 있는 빠른 정책적 대응이 요구된다. 월세가 주택시장을 움직이는 새로운 엔진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월세 시장에 대한 이해가 빠르면 빠를수록 브레이크 없는 폭주열차의 매맷값 하락 속도와 전셋값 상승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